지역 감정은 정치가 만든 허상인가, 현실인가? – 선거 전략에 갇힌 한국 사회의 분열 구조를 넘어서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지역감정, 특히 영호남 갈등만큼 구조적으로 깊고 오래된 문제는 드물다. 그 뿌리는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며, 그 실체는 자연 발생적인 감정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고착화된 구조다. 무엇보다도 이는 선거 승리를 위해,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을 분열시키는 방식으로 활용돼 온 현대 정치의 부끄러운 유산이다.
1. 산업화와 지역 불균형: 시작은 국가 전략이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 전략은 ‘경부축’ 중심의 경제 개발이었다. 서울과 대구, 부산을 잇는 축에 국가 자원이 집중되었고, 이로 인해 전라도를 포함한 비(非)경부권 지역은 체계적으로 소외되었다. 이는 단순한 지역 격차가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결정이 낳은 구조적 차별의 결과였다.
당시 군부와 행정부 요직 다수를 경상도 출신 인맥이 장악했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반복되는 “인재의 지역 편중” 문제를 보여주는 단초였다. 산업화의 수혜자는 분명했고, 소외된 지역의 상실감은 천천히, 그러나 깊이 쌓여갔다.
2. 1971년 대선: 감정이 전략이 된 순간
지역감정이 정치 전략으로 처음 노골화된 순간은 1971년 대통령 선거였다. 박정희와 김대중, 경상도와 전라도를 대표하는 두 후보의 대결은 처음부터 지역 구도를 강하게 의식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자신에 대한 민주화 요구를 ‘지역 간 세 대결’로 왜곡하며, 영남 결집을 유도했고, 이는 곧 호남의 방어적 지역 정체성 강화를 낳았다.
이후의 선거들은 모두 이 프레임 안에서 반복되었다. 정당은 특정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유권자들은 출신 지역과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이는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정책이 아닌 지역이 기준이 되었고, 유능함이 아닌 출신지가 후보의 당락을 결정지었다.
3.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된 정치적 지역감정
1980년대 전두환 정권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지역감정의 비극적 전환점이었다. 군부가 자행한 광주의 학살은 단지 한 도시, 한 지역의 아픔이 아니라 국가의 폭력이 특정 지역에 집중된 사례로, 호남의 정치적 소외감은 극단에 달했다. 이 사건은 “호남=반체제”, “영남=체제 수호”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1990년 3당 합당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DJ의 민주계가 배제되고, TK 기반 보수 정당들이 연합해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은 정치적 차원에서 호남을 다시금 소외시켰고, 이에 따른 분노와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지역감정은 이제 일상의 말과 행동, 온라인상의 혐오 표현에까지 녹아들었다.
4. 정치인은 왜 지역감정을 계속 활용하는가
정치인에게 지역감정은 ‘가장 값싼 동원 수단’이다. 정책은 설득이 필요하고, 인물의 자질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지역은 말 한마디로 선을 그을 수 있다. “우리 지역 출신 후보”, “우리 동네 사람”이라는 구호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표 결집 방식이다.
그 결과, 특정 지역에선 어떤 후보든 당만 맞으면 당선되고, 반대 지역에선 아무리 훌륭해도 낙선하는 비정상적 구조가 고착됐다. 정치는 점점 무능해졌고, 국회는 지역 대변자들의 싸움터가 되었으며, 유권자는 갈등의 소비자이자 희생자가 되었다.
5. 이대로 두면 사회 전체가 병든다
지역감정은 단지 선거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인사 정책, 교육 기회, 사회적 연결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은 여전히 채용 과정에서, 입시 면접에서, 공공기관 인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역 혐오가 일상적이고도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치가 지역감정을 방치하거나 방조하면, 그것은 증오와 차별의 정치를 정당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정치인의 책임 회피는 사회 전체의 분열을 고착화시키며, 민주주의의 뿌리를 병들게 한다.
6. 해소를 위한 6가지 방향
이제는 이 고질적인 구조를 끊어야 할 때다. 다음 여섯 가지 방향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1) 경제적 균형 발전: 지역별 예산과 개발 프로젝트를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 전라도·강원도·충청권 등 상대적 낙후 지역의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2) 공정한 인사 정책: 공기업, 공무원, 군·경찰 인사에서 특정 지역 편중을 해소하고, 지역 인재의 등용을 제도화해야 한다.
3) 지방자치의 실질적 강화: 중앙집권을 완화하고, 지방정부의 권한과 재정 자율성을 확대해 각 지역이 독립적 성장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4) 지역 간 교류 활성화: 자매결연, 청소년 교류, 스포츠 대회 등으로 물리적 거리를 심리적 거리로 좁혀야 한다.
5) 시민교육과 캠페인: 학교와 언론이 협력해 지역차별의 역사와 문제점을 바로잡고, 미래세대에게 올바른 지역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6) 온라인 혐오 대응: 지역 혐오 표현에 대한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고, 법적·제도적 제재를 확대해야 한다.
7. 결론: 선을 넘은 정치, 책임져야 할 시대
지역감정은 결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을 위한 계산 속에서 만들어지고, 조장되었으며, 방치되어 왔다. 이 책임은 정치인에게 있다. 그리고 이제 그 고리를 끊는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정치는 국민을 갈라놓는 도구가 아니라, 통합의 기술이어야 한다. 지역은 다양성의 자산이어야지, 차별의 근거가 되어선 안 된다. 더 이상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이 우리 사회의 운명을 가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