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영웅입니다.

179명을 보낸 날, 나는 거기에 있었다(10번째 이야기)

마인드헌터(MindHunter) 2025. 3. 2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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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 항공기 추락 사고. 연말의 들뜬 공기는 잿빛으로 물들었고, 희망 대신 절망이 활주로를 가득 메웠다.

강중석 소방위.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베테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30년 넘게 화염과 연기 속을 헤쳐 온 그는, 이제 화상 자국과 굳은살 박인 손만이 훈장처럼 남아 있었다. 무안소방서 00지역대로 향하는 일요일 아침, 그는 잠시나마 일상의 평온을 느꼈다. 가족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누고, 낡은 낚싯대를 손질하며 다가올 휴일을 꿈꿨다. 하지만 붉은 소방복을 걸치는 순간, 그는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 아닌,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야 했다.

강중석은 사무실 문턱을 넘어선 지 10초도 안 돼, 혀를 델 듯 뜨거운 커피를 간신히 한 모금 삼켰다. 그 찰나, 찢어지는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후려쳤다. 삐이이이- 굉음은 마치 쇠꼬챙이로 뇌를 쑤시는 듯했다.
 
"화재 출동!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추락!" 무전기 너머 날카로운 목소리가 강중석의 30년 소방 경력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여객기. 그 단어는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강중석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손에 들린 머그잔은 책상 모서리에 꽝 소리를 내며 처박혔고, 짙은 갈색 액체가 바닥에 왈칵 쏟아졌다. 뜨거운 김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그의 손은 땀으로 축축한 방화복을 움켜쥐고 있었다. 발은 저절로 펌프차를 향했다.
 
산소통을 짊어지고 좁은 운전석에 몸을 구겨 넣었을 때, 강중석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오직 '여객기… 여객기…' 그 묵직한 단어만이 텅 빈 공간을 울렸다.
 
30년. 그는 수많은 화재 현장을 누볐다. 사람을 구하고, 시체를 수습하고,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목격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낡은 펌프차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향해 질주하는 동안, 강중석은 차창 밖으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 기둥을 보았다. 거대한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 맹렬한 기세로 하늘을 찢어발기는 듯했다. 불길은 멀리서도 그 뜨거운 존재감을 드러내며 강중석의 뼈 속까지 저릿하게 만들었다. 가까워질수록 역겨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땀으로 범벅된 손 안에서 핸들이 미끄러웠다. '경비행기일 거야…' 그는 간절하게 되뇌었다. 확신은 없었다. 희망 섞인 자기 최면에 가까웠다.
현장은, 그의 모든 희망을 잔혹하게 짓밟았다.
 
지옥. 그 단어 외에는 그 광경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맹렬한 바람은 기름 냄새와 타는 냄새를 실어 날랐고, 검은 연기는 살아있는 뱀처럼 땅 위를 기어 다녔다. 활주로 한복판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기체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동체는 충돌의 충격으로 산산이 조각나, 마치 거대한 쇠붙이 조각상을 연상시켰다. 비행기라는 단어 자체가 모욕적으로 느껴질 만큼 처참했다.
 
가장 끔찍한 것은, 검게 탄 형체들이었다. 그을린 살점과 뼈 조각이 활주로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인체의 일부로 짐작되는 것들이 철조망에 걸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 살 타는 냄새, 기름 타는 냄새, 썩어가는 냄새가 뒤섞여 역겨움을 넘어선 공포를 자아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소방관에게도 익숙해질 수 없는 냄새였다.
 
강중석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매캐한 연기에 목구멍이 타는 듯했다. 폐 속으로 파고드는 고통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무릎을 짓누르는 공포를 애써 외면했다. 수없이 반복해 온 일이었다. 동시에, 단 한 번도 익숙해지지 않는 악몽이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그는 불길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잔해 더미 위를 걸을 때마다, 끔찍한 감각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으스러지는 소리, 짓이겨지는 감촉. 그는 차마 눈을 내릴 수 없었다. 그 감각이 사람이었는지, 기계 부품이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녹아내린 철판은 끔찍하게 뜨거웠고, 날카롭게 찢어진 금속 파편들은 사방에 흉기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파편 더미를 헤치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혹시… 누구 없습니까! 살아있는 사람! 제발!"
그의 외침은 찌그러진 동체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흩어질 뿐,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산소 마스크 안은 땀으로 가득 찼고, 시야는 점점 흐릿해졌다.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몇 번이고 정신을 놓을 뻔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불길은 여전히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는 단 1%의 가능성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는 이 지옥 속에 머무를 가치가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뒤늦게 도착한 지원팀 대원들이 하나둘씩 현장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중석에게는 이미 몇 분이 아니라, 몇 생을 헤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료들의 얼굴을 확인한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지옥에 뛰어들었고, 누구보다 늦게 그곳을 떠날 것이다.
 
강중석이 본 것은, 단순한 불길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의 생명, 그리고 그 연약함과 소중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소방관이었다. 그리고 그날,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타인의 생명을 위해 가장 깊숙한 지옥의 문턱을 넘어섰다.

기적은 일어났다. 꼬리 부분 잔해 속에서, 두 명의 생존자가 발견된 것이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그들을 발견했을 때, 강중석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들을 구조해 구급대원들에게 인계했다. 더 많은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그는 다시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기적은 없었다.

강중석 소방위는 그날, 무안국제공항에 짙게 드리운 검은 연기 냄새를 잊을 수 없었다. 175명의 탑승객, 승무원4명 사망이라는, 대한민국 항공 역사상 최악의 참사. 뉴스 속보와 텔레비전 화면은 연일 ‘대형 참사’라는 자막으로 도배되었지만, 그는 화면 너머의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불길 속에서 터져 나오던 비명, 살려달라는 절규, 타는 냄새와 녹아내리는 쇳덩이 냄새가 뒤섞인 그 지옥도를.

그는 영웅이 아니었다. 화려한 언론의 조명을 받는 구조대장도 아니었고, 현장을 지휘하는 책임자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매일같이 화재 현장을 누비는 평범한 일선 소방관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는 누구보다 먼저 활주로에 도착했고, 누구보다 늦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참혹한 광경을 목도했다.

현장은 ‘파괴’라는 단어조차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처참했다. 거대한 새처럼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어야 할 비행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쇳조각 더미로 변해 들판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녹아내린 철골과 타버린 살점은 구분이 어려웠고, 잔해 틈새에는 검게 탄 시신들이 웅크린 채, 혹은 좌석에 그대로 눌어붙은 채 발견되었다.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절규가 더해지자, 현장은 살아있는 자들의 고통으로 뒤덮인 또 다른 형태의 지옥으로 변모했다.

“우리 애는 절대 죽지 않았어요… 제발…다시 한번 찾아주세요...00아” 한 어머니가 잿빛 얼굴로 찢어지는 목소리를 냈다.
“내 딸… 엄마가 왔어…어디에 있는 거냐, 제발...제발…” 다른 여인은 무너진 기체 앞에서 오열했다.
“내 새끼… 어디 있니? 아빠야… 아빠 왔어…” 한 남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잔해 속을 헤맸다.

강중석은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감히,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만한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묵묵히 시신 수습용 천을 꺼내 시신들을 덮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끈이 산산이 조각나는 순간을 지켜보며, 그는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왜… 단 한 명도 살릴 수 없었을까…’

그는 시신을 수습하고, 유해를 분류하고,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뒤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 부모 앞에서, 자식의 마지막 흔적이라도 찾으려는 아내 앞에서, 그는 그저 침묵했다. 아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는 자신이 지금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심지어 이 처참한 순간에도 ‘일’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혐오감을 느꼈다. 마치 방관자처럼, 그들의 고통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자신의 무력함에 숨 막힐 듯 괴로웠다.

밤이 되면, 그날의 참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불길 속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뻗던 사람, 얼굴 절반이 숯덩이처럼 타버린 채 희미하게 숨을 쉬던 승객,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아이의 시신… 그 끔찍한 장면들은 강중석의 눈꺼풀을 밀어내고, 밤마다 그의 꿈속에 되살아났다. 그는 악몽 속에서 수없이 많은 시신들을 다시 덮어야 했고, 절규하는 유가족들의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 했다.

동료들은  그를 위로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강중석은 그 어떤 위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굳게 다문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너진 비행기 잔해 틈에서, 인간의 형체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시신들을 하나씩 꺼내 천으로 덮던 끔찍한 순간들이 여전히 그의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꺼낸 시신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등에는 작은 캐릭터 가방이 매달려 있었는데,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아이가 얼마나 아끼던 물건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차마 그 가방을 떼어낼 수 없었다. 그대로 품에 안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흐느꼈다.

“소방관은 끝까지 남는 사람이다.” 그것은 강중석이 평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 누구보다 늦게까지 그 자리에 남아있었던 자신을 원망했다.
‘왜… 나는 그 자리에 그렇게 오래 있었을까…’
그 질문은 그날 이후 한 번도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구보다 오래 현장을 지켰고, 누구보다 많은 시신을 마주했지만, 그는 그토록 무력했다. 그 사실이 끔찍한 악몽처럼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아마 평생, 이 끔찍한 짐을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한복판에서, 그는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파괴된 현장에서, 불타는 쇳덩이 속에서도 인간의 마지막 흔적을 지켜냈다.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는 그 끔찍한 현장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아직도 그 활주로에 서 있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그날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출처 : BBC News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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